* 이 책은 책 내용을 스포하고 있습니다. 읽지 않으신 분들은 주의해주세요.
[도서 정보]
발행 : 2020.04.13
출판 : 안전가옥
안전가옥 쇼트 시리즈의 두번째 책으로 조예은 작가의 단편집이다.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의 첫 책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에서 탄탄한 구성의 호러 스릴러를 선보였던 작가의 연출력은 단편집에서 더욱 다양한 색채로 빛을 발한다. 미묘하지만 분명한 폭력을 감내해왔던 여성 빌런의 탄생을 그린 '초대', 물귀신과 숲귀신 사이의 사랑스러운 이끌림을 담은 '습지의 사랑', 블랙 유머를 통해 가부장제적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오컬트 좀비물 '칼테일, 러브, 좀비',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등 네 작품을 수록하였다.
[작가 정보]
조예은
제 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에서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우수상을 제 4회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에서 '시프트'로 대상을 수상했으며 최근작으로는 안전가옥의 첫번째 장편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스노볼 드라이브',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가 있다. 좋은 이야기에 대해 고민하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는 중이다.
[줄거리/책 내용 기록하기]
<초대>
채원은 어렸을 적 억지로 회를 먹은 이후 17년째 목에 걸린 가시에 시달리고 있다. 남자친구 정현을 아끼던 마음에 균열이 생기면서 목구멍의 통증은 더해졌다. 정현의 마음에 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자존감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애쓰는 사람은 자신뿐이었던 것이다. 그 사이 채원 앞에 나타난 흐릿한 인상의 여자 태주는 정현의 핸드폰 메시지에서 폐업한 리조트 광고지에서 모습을 보이며 서늘한 존재감을 더해간다. 채원은 마치 태주의 초대를 받은 듯 그의 정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 어느 순간부터 난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의 취향에 맞게 옷을 입었고 머리를 바꾸었다. 내 삶이 모든 게 정현에게 맞춰져 갔다. 그래도 당시에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치 마취약이라도 맞은 것처럼 나는 스스로의 변화에 무뎌졌다. 누구에게 뭐라고 하소연할 수도 정현에게 따질 수도 없었다.그가 한 건 강요도 협박도 아닌 한마디 말일 뿐. 전부 내 선택이었으니까.
<습지의 사랑>
물귀신 '물'은 인적 드문 하천에서 지루한 날들을 이어 가다 맞은편의 소나무 숲을 거니는 '숲'을 만난다. 물은 평소처럼 상대방을 놀라게 해 쫓아내려 했지만 숲은 반갑게 인사하며 웃음 짓는다. 그 이후 물의 마음은 숲으로 가득차고 둘은 종종 만나면서 가까워진다. 고즈넉했던 만남이 심각한 얼굴의 숲 출입자들 때문에 깨어지자 물은 오래 전 막 귀신이 될 무렵에 느꼈던 원망과 분노에 다시금 휩싸인다.
# "넌 이름이 뭐야?" 물은 죽기 전의 자신에 관해서는 기억나는 게 없었다. 숲처럼 자신도 뭔가를 말해주고 싶었는데 물은 슬퍼졌다.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없는 마음이 슬펐다. 물은 더듬거리다 말했다. "나는 잊어버렸어. 알려 줄 이름이 없어. 이름은 커녕 얼굴을 본 지도 무척 오래돼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그러자 숲은 답했다. "없어지면 다시 만들면 돼. 네가 누구인지 이름을 정하는거야."
<칵테일, 러브, 좀비>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직장 동료들과 술을 마셨던 주연의 아빠는 좀비가 된 채로 집에 돌아왔다. TV 뉴스에 나왔던 좀비 바이러스 1차 감염자들은 모두 사살되었다. 엄마와 주연은 정부가 조치 방안을 마련할 때까지만이라도 아빠를 데리고 있기로 하지만 이미 인간의 이성을 잃은 아빠는 엄마를 제 먹이로 삼으려 든다. 주연은 고집불통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아빠를 완전히 미워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한 지난날을 돌아보며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 주연은 멍하니 조금씩 움직이는 기생충들을 바라봤다. 머리카락처럼 얇은 기생충의 표면에 저리 다양한 세포들이 꿈틀대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저렇게 작은 애들도 진화라는 걸 하는데 살아보려고 변하는데 우리는 왜 지금껏 그대로였을까.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아버지가 어머니를 과도로 죽였다. 나는 그 과도를 받아들고 아버지를 죽였다 뒤이어 스스로를 죽이면서 한가지 후회를 했다. 조금만 상황이 달랐다면 어머니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시간을 되돌려 줄까?"
나는 수개월째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그는 몰래 내 자취방에까지 들어왔다. 옆 학교 남학생 덕분에 스토커에게서 벗어나게 되지만, 되돌아보면 그 남학생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시간을 되돌려 줄까?" 나는 앞으로 겪게 될 일을 모른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 나는 세 번의 기회를 다 써버렸고 결국 과거의 아버지를 죽이지 못했다. 이제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떻게 되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귀게 익은 목소리가 말했다. 맞는 말이다. 결국 일어날 일은 벌어지는 법이다.
#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검은 옷의 남자의 얼굴이 왜 아이의 얼굴인지, 나는 왜 그때 엉엉 울었는지, 아이가 왜 과거의 찬석을 죽이려고 했는지, 왜 그 자신이 사라지고 말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멀리서 아이가 초밥이 담긴 비닐봉지를 들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아이와 초밥을 함꼐 먹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세번의 기회를 다 써버렸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수십 년 만에 머릿속에서 울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르 깔깔깔, 하고 웄는다. "결국 벌어질 일은 벌어지지. 깔깔깔."
[감상문]
개인적으로는 판타지스러운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여러 단편을 묶어낸 책으로 하나의 스토리를 읽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지만, 읽고나면 '잉? 이게 뭐지?' 라는 느낌이 사실 좀 들었다. 그래도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감상문과 생각들을 읽고나니 이런 얘기를 전달하고 싶어서 상상 가득한 호러물로 풀어내는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는 일상 속에서 늘 생기는 감정과 생각들인데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어떻게보면 가스라이팅 당해왔던 우울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스토리들인 것 같다. 어떻게보면 잔혹한 장면들인데 책 속에서 상상속에서 분노를 표출하면서 극복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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